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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봄바람, 꽃, 나무의 변주. 개심사,해미읍성

by 힘월드 2024. 4. 10.

봄바람, 꽃, 나무의 변주. 개심사, 해미읍성

 

개심사 왕벚꽃
개심사 왕벚꽃

 

봄입니다. 한 곳에 있기 어려운 계절입니다.
색들이 유혹하고 바람이 유혹합니다.
나들이가 부쩍 잦아졌습니다.
나들이가 잦아도 갈 때마다 보고자 하는 것이 다르고,
보고자 하는 것이 다른 만큼 다른 것이 보입니다.
이번엔 왕벚꽃과 청매화로 유명한 개심사입니다.
개심사는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입니다.
마음을 열라는 이름을 가진 개심사는 소박한 마음이 충만해지는 절이었습니다.
개심사 앞 두 개의 직사각형 연못이 특히 인상적인 절이었습니다.
 
개심사는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상왕산에 있는 절로서 삼국시대 백제의 승려 혜감이 창건한 사찰입니다.
북쪽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심검당과 무량수각, 그 전방에 누각건물을 배치하여 조선 초기의 배치법을
 따르고 있습니다. 문화재로는 대웅전 앞의 오층석탑과 청동향로가 있습니다. 개심사는 충청남도 4대 사찰
중의 하나입니다. 개심사의 벚꽃은 4월 중순 석가탄신일을 전후하여 만개한답니다.
 
<신창저수지입구-개심사-일락산-가야산석문봉-가야봉-남현군묘-상가리주차장
   해미읍성>
 
개심사로 가는 길, 초입부터 걷기 위해 멀찍이 앞서 내렸습니다.
개심사의 시작은 저수지부터였습니다. 본론 전의 예열 같은 것이었습니다.
저수지를 휘돌아 걸었습니다. 저수지 바람이 코끝은 스쳤습니다.
넓게 펼쳐진 서산의 목장 초지에서 저수지로 향해 서풍이 불어 왔습니다.
실크의 촉감을 닮은 바람이었습니다.
봄바람이라기에는 좀 센 듯 했어도 피부를 휘감은 감촉은 부드러웠습니다.
어느 벚나무에서 떨어진 것인지 알 수 없는 꽃잎 하나가 바람을 따라 날리더니
앞서 걷던 사람의 어깨에 내려앉았습니다.
꽃잎이 개심사로 향하는 걸음에 동반자가 되려나 싶어 꽃잎이 내려앉은 앞사람의 어깨를 바라봤더니
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푸르르 땅으로 떨어져 다른 꽃잎들과 섞였습니다.
개심사의 만개한 꽃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었습니다.
뭔가 딱 맞춘 느낌적인 느낌이었습니다.
왕벚꽃인지 알겠더라고요.
꽃잎을 셀 수가 없을 만치 겹겹이 겹쳐있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레 크기도 클뿐더러 모양도 풍성한 느낌이었습니다.
보통, 벚꽃은 봄바람과 봄비 몇 번으로 화려하게 만개해 있다가도 언제 그랬나는 듯이
떨어져버려서 사람의 심정을 안달나게 만들곤 했습니다.
뭉쳐있어서 꽃의 세력이 커보였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홑겹인 얇은 꽃잎이 겨우 6장 정도였습니다.
왕벚꽃은 겹겹으로 싸인 꽃잎 덕분으로 컸고 존 더 강해 보여 안심이 되었습니다.
푸르스름한 빛을 띠는 청매화는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개심사는 단청도 화려하지 않았고 규모도 그리 큰 절은 아니라 소박한 절이었습니다.
꽃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소박하지 않았습니다. 절의 규모가 크고 작고는 안중에도 없이 화려했습니다.
개심사는 일 년에 일정 기간만 소박한 절에서 화려한 절로 탈바꿈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꽃이 만개한 때에 개심사를 방문한 나는 개심사를 화려하고 밝디 밝은 절로 기억할 거 같았습니다.
개심사에서 꽃 뭉텅이가 주는 깊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묶이면 묶일수록 빛을 발하고 더 커지고 그 커짐으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끌어당기는 것 같았습니다.
 
본격적인 산행에 나섰습니다.
숲 속의 오솔길오솔길로 이어지는 길은 새색시의 가르마처럼 명확했습니다.
이제 막 피어난 울창하지 않은 연두 덕분에 길은 더 노랗게 선명했습니다.
연두색 속의 노란 길.
구불구불한 길은 흙길로 끝을 모르고 이어질 것 같았습니다.
흙길을 지나니 바위길이 나타났습니다.
바람도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오솔길의 굴참나무 이파리들은 이제 피기 시작했습니다.
이파리들이 아기 주먹처럼 꼭 쥐고 있다가 셈하듯이 손가락을 하나씩 둘씩 펼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속살이 정말 여릿했습니다.
이파리에 손끝을 대었습니다.
힘을 조절하지 못한 손끝에 상처라도 날까봐 조심스러워졌습니다.
그 여릿한 이파리들도 흔들렸습니다.
오솔길 나무 틈으로 스민 바람에 한 방향으로 연신 흔들리기에 바람이 센 봄날이구나생각했습니다.
바람이 정말 세고 많았습니다.
능선으로 올라서자
나무가 많지 않은 바위 길로 들어서자 오솔길에서와는 비교할 수 없는 바람의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바람에 날아 갈까봐 모자를 꾹 눌러 주었습니다.
바람의 세기가 봄바람인지 가을바람인지 헛갈릴 정도였습니다.
우리나라는 봄에 주로 오후에 강한 서풍이 부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겨울 내내 차가워진 공기가 한반도를 빠져나가면서 생긴 바람일 것입니다.
꽃이 만개한 봄, 겨울은 완전히 한반도를 벗어나고 있었나 봅니다.
 
가야산 정상에서 바람과 마주 했습니다.
초록 물결과 함께 바람에 몸을 맡겼습니다.
습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바람이 몸을 훑고 지나갔습니다.
서산의 봄바람은 새 잎이 상할까 조심스러운 약한 느림으로 시작했다가
모자를 날려버릴 것 같은 강한 빠름으로 변하길 여러 번 했습니다.
아다지오와 알레그로의 변주 같았습니다.
그 변주 속의 우리는 하나의 악기인 냥 몸을 맡겼습니다.
쉽지 않고 짧지 않은 길 바람과 함께 결국 잘 걸어냈습니다.
 


해미읍성

해미읍성으로 향했습니다.
해미읍성은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남문2로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서산을 상징하는 관광지이고 서산의 9경 중 1경으로 지정되었답니다.
이순신 장군이 무과에 급제하고 군관으로 부임하여 근무하던 곳이기도 합니다.
정약용은 당시 천주교 신자라는 죄명으로 열흘간 귀양 왔던 곳입니다.
해미읍성의 성벽은 둘레는 약 1.8킬로미터이고 높이는 5내지 6미터라고 합니다.
 
해미읍성 성벽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오랜 세월 자랐을 소나무 숲을 병풍으로,
돌담과 잘 가꾸어진 잔디와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이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해미읍성은 군사적 요충지 역할을 했던 곳이어서인지 전쟁에 사용하던 무기들이
잔디밭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저기 저 나무는 수령이 몇 년이나 되었을까?” 동행한 사람들과 내기도 해봤습니다.
300년 묵은 회화나무 아래에 섰습니다.
그 나무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의 손과 발 그리고 머리채를
매달아 고문하던 나무로 호야나무라고 불립니다.
지금은 충청남도 기념물 172호라고 합니다.
호야나무라 불린 회화나무는 그곳에서 300년 동안 서서 무엇을 보았을까요,
누군가가 기록한 300년이 맞기는 맞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해미읍성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200년이 넘은 느티나무도 있습니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을 바라보며 탁 트인 공간을 걷는 것만으로도 해미읍성은 멋진 곳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