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도 쉬어가던 곳, 조령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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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령산
조령산은 높이 1,017미터로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에 있습니다. 조령, 즉 새재라 함은 새들이 넘나드는 통로로 새들되 쉬어가는 고개란 뜻이 있습니다. 고대에는 초점이라 불렸는데 이를 한글로 옮기면 새재라고 합니다. 명칭에 대한 다른 이야기는 문경읍 관음리의 하늘재와 괴산군 연풍면의 이우리재(이화령) 사이에 난 고개라는 것과 새로 생긴 고개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 옛날에 이곳에 억새가 많아서 붙여졌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백두대간 중 최대로 난이도 높은 구간으로 손꼽히는 곳이 조령산 종주 코스입니다. 문경새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조령산입니다. 조령산은 경북 문경시와 충북 괴산시를 나누는 백두대간 마루 능선을 이루는 산입니다. 전체적으로 산림이 울창하고 커다란 바위 지대가 많으며 기암괴석과 오래된 소나무가 어우러진 산입니다. 충청북도 쪽으로는 암벽이 발달하였고 경상북도 쪽은 주흘산(1,106미터)과 마주하며 그 사이에 문경 제1, 제2, 제3관문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화령(548미터)에서 제3관문 능선 길은 암벽이 있어 등산의 묘미를 즐길 수 있습니다.
문경새재
제3 관문이 642미터로서. 문경새재는 과거 영남사람들이 이 고개를 넘어 서울로 가는 주요한 관문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영남지방의 선비들은 추풍령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질까 봐, 죽령은 대나무처럼 미끄러질까 봐 가지 않고, 문경새재를 통해서 과거시험을 보러 갔다고 합니다. 문경이라는 이름이 ‘경사로운 소식, 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는 의미도 있다 합니다. 그러니 급제를 바라는 선비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영남의 선비는 물론이거니와 호남의 선비들도 굳이 먼 길을 돌아 이 길을 택했다고 합니다. 예로부터 교통과 국방의 요충지였습니다. 새재는 임진왜란과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왜군에게 당한 패배를 후회하며 유성룡은 전쟁에 대비하여 관문을 설치할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이 선조 30년에 일자형의 성을 쌓고 가운데 문을 세워 고개 아래를 내려다보는 조령산성이 만들어졌습니다. 문경새재 길은 부산 동래에서 한양으로 가는 최단 거리였습니다. 문경새재는 제1관문 주흘관, 제2관문 조곡관, 제3관문 조령관 등 3개의 관문과 원터 등 주요 관방 시설과 정자와 주막 터, 성황당과 각종 비석 등이 옛길을 따라 잘 남아 있습니다. 문경새재에는 박달나무가 많아 박달재라고도 불렀습니다. 조령산 정상부는 평탄한 편이나 사방이 비교적 급경사입니다. 특히 조령산을 중심으로 북쪽은 월악산, 문수봉, 소백산 등으로 이어지는 높은 봉우리가 연속적으로 있으며 남쪽은 속리산으로 이어져서 차츰 낮아집니다. 숙종 34년(1708년)에 길이 6척, 너비 4척, 두께 2척 되는 둘레 18,509보의 산성을 쌓았는데 현재 200미터가량 남아 있습니다. 주흘산, 조령산의 다양하고 아름다운 식생 경관과 옛길 주변의 계곡 폭포, 숲길 등 경관 가치가 뛰어나며, ‘옛길 걷기 체험’, ‘과거길 재현’ 등 옛것과 관련한 다양한 체험 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주위에는 신선봉(967미터)과 마패봉이 있습니다. 이 중 신선봉에 올랐습니다.
신선봉
조령산에서 신선봉까지의 거리는 1.68킬로미터입니다. 신선봉은 고사리봉, 할미봉, 온산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신선봉이라는 지명은 신선이 달밤에 놀았다고 해서, 할미봉은 마고 할머니가 이곳에 와서 놀았다고 해서 붙어졌다고 합니다. 신선봉은 산세가 아름다운 산이지만 주변의 유명한 산들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조령산 정상을 지나 마패봉과 폭포 위를 지나고 치마바위를 거치는 코스로 경치가 좋고 길이 편한 편입니다. 신선봉은 산세가 아름답고 산길도 바위 봉우리로 사방의 시계가 막힌 곳이 없습니다. 12폭 병풍을 둘러친 듯한 병풍바위, 수백 년이 됨직한 노송이 바위에 뿌리를 내린 곳의 아래에는 할머니 한 분이 돌이 되어 노송을 향해 정성을 들이는 모습의 할미바위가 있습니다. 정상에서 알파벳 브이자를 이룬 협곡을 따라 10분 정도 내려오면 북쪽으로 거대한 바위가 치마 끝처럼 들린 치마바위가 있습니다.
나무와 바위를 원 없이 껴안았던 날이었습니다. 나무는 그 모양새가 영험해서 자발적으로, 바위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대롱대롱 방식으로 매달렸습니다. 조령산은 바위와 소나무가 많은 산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의 소나무는 울진의 금강송 같이 기름지고 잘 생기기보다 노인의 머리카락처럼 윤기 없이 푸석거렸습니다. 그래서 더 눈길이 갔었습니다. 여러 번 쓰다듬으며 지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위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에 대한 경외심의 표현이었습니다. 바위가 많은 산, 가늠할 수 없는 시간 동안 마디게 자라나는 뿌리를 바위에 안착시켰고 높이를 키웠고 부피를 넓혔을 그들의 노고가 떠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위가 많은 산. 산행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충고를 흘려들었던 것을 후회하곤 했습니다. 오름에는 숨이 턱에 찰만큼 가팔랐고 내림에는 바위가 버티고 있어 빨랫줄처럼 걸쳐서 내려져 있는 줄에 뒤웅박처럼 매달려 낑낑거려야 했습니다. 어렵게 올라가면 대간을 이루는 산들이 사방에 그 기세를 펼쳐 첩첩산중을 한눈에 볼 수 있었습니다. 조망을 즐기며 몸과 마음을 식히고 다시 바윗길을 내려와야 했습니다. 바위를 무서워하는 편이라 한 발 한 발이 매우 정성스러웠습니다. 쉽지 않은 산행 길이었습니다. 정성스러운 것은 좋지만 너무 힘을 준 탓에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대신 쉽게 만날 수 없는 아름다운 산세와 기암괴석 등의 풍경이 진하게 남아 있는 산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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