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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구례 오산 사성암, 인생이 소풍이라니요

by 힘월드 2024. 4. 23.

구례 오산 사성암, 인생이 소풍이라니요.

 

구례 오산 사성암
구례 오산 사성암구

 

 

구례 오산은 원래 신선이 사는 산이라는 의미입니다. 그중 오산의 사성암은 고승 네 명이 수행을 한 곳이라 전해집니다. 오산 사성암은 암자의 위치부터 눈길을 끌지만 간직한 전설도 신비스러운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전남 구례 오산의 높이는 530.8미터입니다. 오산은 바위의 형상이 빼어나 금강산과 같으며 예로부터 소금강으로 불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오산 등산은 정상 바로 아래 사성암까지 왕복버스를 타고 1.9킬로미터 이동하면 되고 정상까지는 2.4킬로미터입니다. 사성암에서 정상까지는 불과 500미터쯤입니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산행 코스는 죽연마을에서 출발합니다. 죽연마을에서 정상을 거쳐 매봉에서 선바위 삼거리를 지나 동해마을 능선 삼거리를 지나 둥주리봉을 거쳐 성지마을까지 9.3킬로미터로 5시간 남짓 소요됩니다. 그밖에는 4시간 코스와 2시간 코스 등 다양하게 있어서 시간과 역량에 따라 등산 코스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절벽 끝에 아스라이 세워진 사성암은 네 명의 성자가 있었던 암자입니다. 구례 화엄사의 연기조사, 원효대사, 도선국사, 진각국사가 그들입니다. 사성암은 천 년의 세월을 넘어 네 명의 고승이 한 장소에서 수도를 했다는 장소입니다. 사성암의 마애입상불은 도선국사가 조각했다는 전설까지 전해집니다. 현재는 유리벽을 설치해 보호하고 있습니다. 사성암 전망대에 올라서면 발아래 섬진강의 줄기가 한눈에 보입니다. 그 동네의 이름은 사도리인데, 사도리라는 의미는 모래사장에 그림을 그리는 동네라는 것입니다. 사도리는 도선국사가 한국풍수를 창시하기 전에 섬진강 주변 모래사장에서 산천의 형세를 그렸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풍수의 실전을 익혔다는 데서 유래합니다.

 

사성암 주차장에서 사성암으로 올랐습니다. 절벽 끝에 위치한 사성암은 위치부터 보는 사람을 압도했습니다. 마애석불이 있는 유리광전에서 내려와 종무소 옆 돌계단을 올라가니 도선굴이 있었습니다. 도선대사가 수련했다는 암굴로 앞뒤로 뚫려있는 굴이었습니다. 도선굴 옆 소원바위를 지나갔습니다. 사성암은 연기조사가 세울 당시 오산사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처음 암자를 세울 때 불상을 모시지 않아서 수도하는 스님들이 화엄사를 보고 절을 했다고 합니다. 도선굴 옆을 돌아가면 그 배례석이 있었습니다. 배례석에서 오산 정상으로 올라갔습니다. 정상석에서 50여 미터만 더 가면 오산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어서 지리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지리산 백두대간 마루금과 섬진강의 유유한 흐름을 보았습니다. 사성암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지리산과 섬진강 줄기는 환상적이었습니다. 섬진강과 평야, 구례읍과 7개면과 지리산 연봉들을 한 곳에서 모두 볼 수 있는 경관 조망점이었습니다.. 암자 주변에는 우뚝 솟은 기암괴석이 있는데 그중에서 풍월대, 신선대, 소원바위 등 1212 비경이 빼어나 명승지로 지정되었습니다. 도선국사가 이곳에서 내려다보며 한국 풍수의 방점을 찍었다는 얘기가 전해질 정도의 섬진강과 지리산의 조망 일등 자리였습니다. 남한의 3대 명당이라는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의 운조루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어기여차, 들보를 남쪽으로 드세나

도선 국사 예 암자를 멀리 바라본다

모래사장에 그이 자취 있는가 없는가

이 복지에 자욱이 구름 이내 일어나네‘

조선 말기 매천 황현이 지리산과 오산에 거주하면서 남긴 시입니다. 

 

천상병 시인은 인생을 나 하늘로 돌아가... 이 세상 소풍이 끝나는 날

가서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라고 소풍에 비유했습니다. 

 

명당이라 이름난 곳이나 기도 성지에서는 그곳에서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숙이고 머리를 조아리는 드러나는 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마음을 모으곤 했습니다. 사성암에서도 그리 했습니다. 마음을 모아 목례를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여 대웅전에 들어가 절도했습니다.. 절을 하면서 원하면 이루어질까를 생각했습니다. 이루어지면 감사합니다 하고 더 이상 바라지 않을까도 떠올렸습니다. 글쎄요. 또 다른 무엇인가를 간절하게 원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소원이 없었던 적이 있었나 떠올리려 했는데 그런 적은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인생이 소풍이라 했습니다. 소풍은 무엇을 원하기보다는 소풍 자체만으로 들뜨는 어떤 것이었습니다. 혹시 보물 찾기가 있었다면 풀숲에 숨겨진 보물을 찾기를 원했을까, 그 정도였을 것입니다.

 

소망을 안고 걸었던 사람들의 발걸음은 길이 되었고 그 길을 따라 걸으며 명당에 도착하곤 했습니다. 사성암까지의 가파른 길이 잘 닦여 있었고 그 길은 절벽으로 이어졌습니다. 절벽 위에서 섬진강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섬진강 주변의 논과 밭과 그곳에 기대어 사는 삶터를 바라보았습니다. 그곳에서 하나의 점일 나의 삶도 덩달아 나타났다 사라졌습니다. 그곳에서 원하던 것들을 떠올렸습니다. 발밑 점 안에 아주 작은 점에 불과했지만 점이 모여 직선을 만들고 직선은 한 방향으로 나갔습니다. 한 방향으로 줄 서있는 사람들 속의 내가 있었습니다. 재미없었습니다. 그렇구나이게 명당의 힘이구나 싶었습니다. 아등바등 줄 서려하지 말자 했습니다. 선을 조금만 벗어나면 면적을 넓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명당의 좋은 기운을 단전으로 들이마셨습니다. 이것이면 이곳 오산 사성암을 찾은 이유로 충분했습니다. 일상에서 벗어나 사성암으로 소풍 나선 길이었으니 일상으로 돌아가 아름다운 날, 아름다운 절이었다고 기억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