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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특별한 하루, 백담사에서 백담사로

by 힘월드 2024. 4. 4.

특별한 하루, 백담사에서 백담사로

 

 

 

봉정암을 가기로 했다. 백담사를 거쳐 영시암을 지나 오세암 찍고 봉정암으로. 그리고 다시 백담사로. 하루 일정이다. 이 정도면 전문산악인의 실력이 필요할 터이다. 나의 실력으로는 완전 무리지만 같이 갈 사람들이 있을 때 해보기로 한다. 마음은 먹고 약속도 잡아 일사천리로 진행되지만 나의 마음은 끌려 다니기만 할 뿐이다. 끌려가다 한 번씩 브레이크를 잡는다. ‘이건 무리다. 민폐를 끼치면 안 되는데. 가서 다른 사람들 고생시키고 불편하게 하느니 이참에서 그만둘까싶다. 그러다 계획을 잡고 준비물을 챙기는 일행을 보며 맞장구를 친다. 다만, “나는 가볍게 갈게. 내가 짐이 되면 안 되니까.”라고 웃음을 날려 동의를 구하지만 그래도 두렵긴 마찬가지고 취소하기도 너무 늦은 것 같다. 그렇다면 할 수 없다. 가는 거지, .

 

용대리-백담사-영시암-오세암-만경대-봉정암-수렴동계곡-백담사.

총 28킬로미터.

동네 둘레길도 아니고 동네 뒷산도 아니고 설악산 산속1244미터에 자리를 잡고 있는 산길을 걸어야 한다.

걷고 싶은 길이 있다는 것과 걸어낼 수 있는 몸을 믿기로 한 나는 걸을 수 있다는 용기를 만용 삼아 하루 만에 그 길을 걷기로 작정하고 나섰다. 

 

백담사에서 백담사로 돌아오는 길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지친 몸을 용대리 아스파트 위에 던져 놓고는 이것이 정말 하루였나,라고, 생각한다.

어떤 하루는 이럴 수 있구나.

몸은 지쳐 도로를 파고들지만 낙오되지 않고 민폐를 끼치지 않았다는 뿌듯함에 어깨에 뽕이 찬다.

 

백담사로 가는 셔틀버스는 첫차가 7시고 막차는 6시로 하루 11시간 운행한다. 이 말은 우리가 11시간 전에 산행을 끝내야 셔틀버스를 타고 내려올 수 있다는 말이다. 열심히 걸어보겠지만 가당치 않을 것 같다. 나의 산행 실력으로는.

 

백담사 계곡 돌탑
백담사 계곡 돌탑

 

백담사 앞, 셔틀버스에서 내린 뒤, 뒤도 돌아보지 말고 걸으려 했으나 아침 공기에 모습을 드러낸 백담사 앞 계곡과 백담사는 그리 두지 않았다. 그 깨끗함과 상쾌함에 누구랄 것도 없이 잠시 들러보기로 한다. 맑은 물은 말할 것도 없고 돌들은 어찌 그리 인지. 계곡 주변 층층이 쌓여 있는 돌멩이 탑을 흘끔 거리며 지체한 시간을 보상하려는 듯 달리다시피 걷는다. 아직 에너지가 남아있는 상태라 가능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리 오래 달리지는 못했다. 걸어야 할 길이 매우 길므로 초반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면 안 된다는 리더의 잔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실지로 달릴 수도 없었다.

 

백담사 계곡을 오른쪽으로 두고 걷는다. 그 길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길이다. 봉정암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어떤 발걸음인가. 큰 소망을 안고 꾹꾹 밟는 길이다. 허리가 구부러진 팔순은 되어 보이는 할머니를 아들이 부축하며 앞 서 걷고 있다. 내가 이 길을 걷기로 결심한 이유가 무엇이든 나는 소망을 가득 안고 걷는 사람들과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처음 수풀더미에서 어렴풋이 길이 생기고 오솔길이 되고 지금은 아스팔트(?)가 되어 있다. 몇 번 방문했던 일행 중 한 사람은 길이 너무 좋아졌다고 연신 감탄하기 까지 했다. “나 때는.”그 때는 말이야. 이런 계단이 어디 있었어.”하면서. 그래도 아직은 걸을만해서 다행이다. 공기도 상쾌하고 틈틈이 나누는 수다도 재미있다.

 

영시암
영시암

 

영시암에서 옹달샘 물을 마시고 수통을 점검한다. 영시암을 지나니 평지가 끝나고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악산과 어울리지 않는 숲 속 오솔길로 걷는다. 굽이치며 오른다. 라면 국물의 간을 비슷하게 느낀다는 것은 서로의 핏속에 염분이 비슷하다는 뜻이란다. 각자의 속도로 같은 길을 걸은 사람들의 땀의 농도는 핏속 염분을 닮아 라면 국물의 간이 같아지는 것처럼 마음의 농도가 닮아 있지 않을까요. 오르락내리락하다 휴식을 갖는다. 그리고 요기를 한다. 달콤한 냄새를 맡고 다람쥐들이 모여들었다.. 야생 동물에게 먹이를 주면 안 된다는 잔소리를 뒤로하고 슬쩍 빵부스러기를 흘리고 서둘러 일어난다. 가야 할 길이 아직 많이 남았다. 5시까지 봉정암에 도착해야 미역국을 먹을 수 있다 한다..

 

오세암
오세암

 

다섯 살 된 아이가 폭설 속에서 부처의 도움으로 살아남았다는 전설이 있는 오세암에 도착한다. 암자를 둘러싸고 있는 풍경이라니. 뒤로는 거대한 바위가, 옆으로는 울창한 나무들이 오세암을 감싸고 있다. 무엇인가가 나를 감싸는 듯해 편안하다. 갈 길이 바빠 자판기 커피 한 잔으로 피로를 달래며 계속 걸어야 한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지쳐가고 있었고 시간은 계획했던 것보다 지체되고 있었다. 우리는 갈 길이 멀다. 계속 걸어야 한다. 거리는 이제 겨우 6키로 넘게 걸었을 뿐이다. 거리도 거리지만 난이도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봉정암
봉정암

 

봉정암에 도착하자마자 줄을 선다. 겨우 시간 맞추어 도착했다. 미역국에 오이무침 세 개. 단출한 저녁이지만 꿀맛이었다. 마시듯이 먹어치운 미역국의 맛을 새기면서 하산을 시작한다. 6시 전 백담사 도착은 물 건너간 것 같다. 굽이굽이 오르던 길을 곧바로 내려가야 하니 경사도가 오르던 길과 다르다. 스틱을 힘차게 짚는다. 계곡의 물소리는 힘찼고 풍경은 나를 압도할 적이 많다.

 

헤드렌턴을 낀다. 어두워졌다. 물론 풍경은 보이지 않고 오직 걷기만 한다. 그만 걷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할 즈음 다리가 보인다. 다리가 보인다는 것은 산행이 끝나가고 있다는 것. 끝날 것 같지 않은 길이 끝나가고 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시작했다는 것은 목표를 향해 가고 있고 결국엔 도착할 것이라는 것. 그런 문장이 나를 찾아온다. 진부하지만 위로가 된다. 곁들여, 나는 이룬 사람이라고 하나 더 덧붙여 스스로를 위로한다.. 산행 시작 전, 백담사 계곡 옆에 숨겨 놓았던 막걸리를 찾아 나누어 목을 축인다. 위로주, 축하주 같은 의미로. 그 맛이라니.

 

버스는 진즉 끊겼다. 어둠 속을 뚫고 백담주차장으로 향한다. 누군가 노래를 흥얼거린다. 같이 부른다. 누군가 댄스음악을 틀었다. 조용한 산길을 음악이 점령한다. 같이 막춤을 춘다. 하늘에 보름달 덕분인지 어둠이 눈에 익어서 인지 거리가 어두우면서 환하다. 멧돼지가 나타날 수 있다는 동료의 위협에 오려면 와라. 우리가 있는데, 뭐, 뭐,라고 대답해 본다.

 

 

백담사를 시작으로 영시암, 오세암, 봉정암을 거쳐 백담사에 이르는 긴 거리.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걸어 마침내 계획한 곳에 도착한 정성스러운 발걸음 수.

햇살이 수분을 날려서 하얗게 빛나는 소금을 만들듯이 이 경험은 쉬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마침내 하얗게 빛나는 마음의 알갱이가 되어 있을 것이다.

아주 작고 밀도가 높아 단단해진 마음의 알갱이 말이다.

그런 마음의 알갱이를 가진 나는 하얗게 빛난다.

오래 기억할 수 있는 소금 알갱이를 얻은 그 길, 그 하루, 나는 자주 꺼내 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