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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먼 곳을 향해 기도하는 곳, 금산 보리암

by 힘월드 2024. 4. 3.

먼 곳을 향해 기도하는 곳, 금산 보리암

새벽 오징어잡이 배
새벽 오징어잡이 배

 

이른 새벽 통영항을 떠납니다.

1박 2일의.

차 안에서 바다를 보니 떠나는 배의 불이 밝습니다.

눈을 뭉쳐 눈사람을 만들 듯이 빛은 뭉쳐 배에 장착한 것 같습니다.

아주 밝은 것들이 줄을 지어 움직입니다.

눈을 뭉쳐 밀도를 높여 눈사람을 만들 듯이 눈사람 닮은 빛사람이 움직입니다.

여명조차 없는 어둠에서 물고기를 유혹하려면 저 정도의 밝기는 되어야 할 겁니다.

홀려야 하기 때문이겠지요.

그것이 상대방의 목숨일지라도 말입니다.

빛을 따라가던 물고기들은 빛에 홀려 그물 속에 갇힐지도 모르겠습니다.

먼 바다 어느 곳에서 빛을 장착한 어부의 생존과 심연에서 깨어난 물고기들의 생존이 사투를 벌일 것 같습니다.

오늘은 어떤 날일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기대하며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금산 보리암
금산 보리암

 

보리암은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 금산(보리암로 665)에 위치하고 있으며 쌍계사의 말사입니다. 683년에 만들어졌으며 보리암은 최초에 보광사였습니다. 원효대사가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 산의 이름을 보광산, 절의 이름을 보광사로 지었습니다. 이성계가 이곳에서 기도를 했으며 현종 때 보광사에서 보리암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보리암은 이성계가 장군이던 시절 이곳에서 기도를 하고 왕이 되었다는 전설로 유명하고 절 아래 이성계의 기도처가 명승지로 따로 있습니다.

 

보리암은 산꼭대기에 올라앉은 절입니다. 보리암은 특히 일몰이 유명합니다. 다만 바닷가에 위치하면서도 산 쪽에 들어와 있어서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바닷가에 위치해서 일까요. 원효대사가 관세음보살을 만나서였을까요. 보리암에는 해수관음상이 있습니다. 해수관음상이 있는 곳들은 기도처로 사람들의 방문이 많은 곳입니다.

 

보리암으로 가는 길. 쌍흥문을 특히 좋아합니다. 원효대사가 두 개의 굴이 쌍무지개 같다고 했다지요. 해골 모양 같기도 합니다. 그곳의 모양은 어머니의 자궁 속과 비슷해 보입니다. 돌계단에 앉아 구멍 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다를 것 없는 것을 것 같은데도 달라 보입니다. 적당히 막혀 있고 적당히 뚫려 있고 그 속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것은 좀 특별한 경험입니다. 등산로를 오르며 흘린 땀방울을 식히기에도 적당합니다. 등산 중에 만나는 휴식 같은 공간입니다. 동굴 속에 앉아 잠시 휴식하고 일어납니다. 잠깐 이지만 편하게 몸을 쉴 수 있던 곳에 목례를 남기고 보리암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옮깁니다.

 

 

금산 보리암 해수관음상
금산 보리암 해수관음상

 

 

 

드디어 보리암 도착.

경내를 살피다 간성관 옆의 계단을 내려갑니다.

신라석탑의 형식을 띤 암전삼층석탑이 투박합니다.

모양은 투박하나 금산의 기가 몰려 있다는 말을 들으니 다시 보입니다.

그리 오랜 세월을 버티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영험해 보입니다.

해수관음상 앞에서 발걸음을 멈춥니다.

우리나라 3대 관음보살 성지는 강화도 석모도 보문사, 강원도 양양 낙산사 그리고 남해 금산 보리암입니다.

해수관음상을 유심히 살핍니다.

한 손에 목이 긴 정병을 들고 있습니다.

손에 든 이것이 약병의 모습이라 병을 치료해 준다고도 합니다.

 

관음상을 올려다보며 오랫동안 한 자리에 서 있는다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합니다.

관음상 발밑에서 여러 명의 사람들이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조아리며 엎드려 있습니다.

그들은 간절했고 정성스러웠습니다.

잔뜩 웅크러진 어깨와 등이 단단합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해수관음상 앞에서 마음을 모았을까요.

눈빛도 표정도 읽을 수 없는 해수관음상은 그저 먼바다로 향해 있을 뿐입니다.

관음상을 따라 먼 바다로 시선을 옮겨 봅니다.

남쪽 바다는 고요했고 한 낮의 바다 물결은 빛을 받아 빛나고 있습니다.

윤슬의 반짝임에 미간은 모아지고, 눈은 가늘어집니다.

오랫동안 바라보기가 어렵습니다.

끝내 시선을 돌립니다.

관음상의 시선은 나보다 10척은 높으니 내가 볼 수 없는 더 먼 곳을 향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관음상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과 관음상 아래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더 올라 봅니다. 보리암은 깍아지른 절벽에 위치하고 있어서 어디를 봐도 아름다운 다도해가 보입니다.

한 낮의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다도해.

새벽 통영을 떠날 때 만났던 바다를 떠올려 봅니다.

칠흑 같았던 바다 위에 떠있던 빛은 아마도 항구로 돌아와 휴식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석불전에서 발걸음을 멈춥니다.

바위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어 석불이 환하게 밝습니다.

이곳에서도 기도하는 사람들이 여럿 보였습니다.

기도는 뭔가 다른 곳으로 보입니다. 형태도 기운도 그렇습니다.

마음이 모아지는 곳의 필요충분조건인가 하는 뜬금없는 생각을 해봅니다.

특별한 곳, 특별한 기운.

금산은 비단으로 온 산을 둘렀다하여 이름 붙여졌다고 하지요.

기도 도량으로 손꼽히기에 손색이 없는 곳 맞습니다.

보리암으로 오르는 길에도 보리암이 자리 잡고 있는 위치에도  경내  곳곳에 있는 특별한 기도처도 말입니다. 기도가 필요한 때에 이곳을 향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